Green  Pencil 엠디메모장

[유미츠] 退

*역전재판




[ 이치야나기 유미히코 X 미츠루기 레이지 ]




退 (물러날 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지휘봉과 붉은 자켓. 그리고 흰 장갑은 첫 만남 때부터 돋보이고 있었다. 남을 깔보는 듯한 반쯤 뜬 눈이 어설프게 자신을 훑을 때면 미츠루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무례하군. 이라 생각하며 그와는 멀리 거리를 두려 했었다.

….

왜 과거형이냐, 하면… 역시 그 사건밖에 없지 않은가. 미츠루기는 기억을 되짚으며 몇 달 전의 광경을 머릿속에 그렸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이어나갔던 그 법정의 모습.

그래. 이치야나기 검사는 그의 아버지를 몰아냈다. 모든 것을 밝혀내고, 끊임없이 흘리던 눈물을 참으며 울부짖는 것을 삼켜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다. 쓰레기장까지 뒤져 가며 찾아낸 그 증거는 헛된 것이 아니였고, 결말은 좋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였겠지. 용케 딛고 올라갔다며 크게 칭찬해도 모자랐다.


"이치야나기 검사."


그 이후로 그는 가끔 나에게 자문을 구하러 직접 찾아왔다. 집무실 안을 돌아다니며 내가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기도 하고, 한참동안 책장의 사건파일을 살펴보며 사건기록을 찬찬히 읽기도 했다. 그러다 말고 소파에 앉아 여러가지 생각정리를 하다가 조용히 방금 본 사건에 대한 질문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아무도 그에게 시키지 않았음에도 나름대로 해 보고 있는 거겠지.

미츠루기는 별다른 막힘 없이 그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일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이전의 검사가 두고 간 것이였지만 간단한 설명은 가능했다. 그 정도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고 있는 건가?"


그렇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다 보면 그는 어느 새 소파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기 일쑤였다. 지루해서인지, 늦은 밤에도 '공부'를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그 횟수가 잦아져 미츠루기는 그에게 담요를 덮어 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날따라 그의 장갑이 눈에 띄었던 것은 왜였지? 단순히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의 손등에 손을 대었던 날. 손가락 끝이 장갑 천을 쓸어내리는 그 몇 초 사이에, 이치야나기 검사는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미츠루기와 마주친 채 황급히 제 손을 품으로 거두었다. 조건 반사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그 행동은 미츠루기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뭔가를 보이기 싫은 듯 가슴팍에서 주먹을 쥐며,


"…이만 가 볼게. 미츠루기 검사."


라고 속삭였다. 화가 났는지, 조금 떨리는 목소리. 


"…가 보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속에서 약간의 동요가 일어났다. 급하게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 쿵, 하고 닫히는 문. 문 바깥으로 이어서 들려오는 발소리.

마지막으로, 정적에 휘감긴 방 안의 미츠루기는 가만히 자신의 손등을 쓸었다.

아주 잠깐동안 눈에 담았던 그의 손등은 이렇게 매끄럽지 않았다.


"…."


그 많던 눈물은 모두 손등으로 빠져나가 버린 걸까.


미츠루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눈을 내리깔았다.


수많은 상처가 담긴 손등을 감싼, 새하얀 장갑.


이제는, 손 댈 수도 없게 되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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