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재판 <3>
*이 글은 시간상 http://md159753.tistory.com/71[작은 회상]의 이전 이야기 입니다.
[ 논다 키쿠조우 X 나루호도 류이치 ]
[상대방이 이미 통화중이오니….]
뚝. 붉은 색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지 세 번째. 약 10분의 시간을 두고 전화를 걸었었다. 누군가와 30분이 넘게 전화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 이상으로.
"…."
그에게 집착하는 것이 좋지 못한 일인 건 잘 알고 있지만서도, 나루호도는 침착할 수가 없었다. 그건 얼마 전의 재판 자료실에서 있었던 웬 여자아이가 하트 모양의 병을 억지로 건네주었던 일과 겹쳐, 끊임없이 목을 죄어댔다.
"같은 학교에 그렇게 예쁜 사람이 있었던가?"
물론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거절했는데. 그래도 마음이라며 무작정 안겨줄 게 뭐람.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키쿠조우 씨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이것저것 변명까지 준비해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키쿠조우 씨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처럼, 통화도 잘 되지 않아. 혹시 약학부 내에서 따로 시험이 있는 걸까? 나루호도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렇다면 문자로라도,
[곧 시험이라서 연락을 받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아. 미안해, 류이치.]
같은 문장을 써내려오던 것이 그 사람의 방식이었다. 내가 너무 그에게 의지했던 걸까? 혹시 그 병을 받을 때 키쿠조우 씨가 보기라도 했던 걸까? 물론 크게 비약된 생각이지만 괜히 마음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심장이 다급히 복부를 짓누르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 있던 간에, 그 사람을 믿자. 올곧은 사람이잖아. 키쿠조우 씨는, 그만큼 멋진 사람이니까.
띠링. 귓속에 휴대폰의 알림음이 도달하기도 전에 잽싸게 폴더를 열었다. 제발. 제발 그 사람이었으면. 매끄럽게 눈을 굴리며 저의 폰으로 도달한 활자들을 속독했다.
[미안해, 조금 일이 있어서 통화를 오래 했던 것 같네. 지금 시간이 조금 났는데, 만날까? 어디 있어?]
"!"
휴대폰을 꽉 잡고 있느라 조금 굳어버린 손가락을 가까스로 움직여 버튼을 꾹꾹 조심스럽게 눌렀다. 지금, 약학대 쪽에, 있어요. 약학대, 뒤쪽.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몸의 긴장을 쭉 풀었다. 어라, 긴장하고 있었던가? 어째 묘한 기분이 들어 혼자 헛기침을 했다. 그럼 그렇지,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는 건 해선 안 되는 짓이야.
"류이치! 꽤 가까이 있었잖아."
"논다 씨!"
발소리가 난다 싶더니, 뒤를 돌아보자마자 포근하게 안겨 오는 그의 모습이 갑작스럽게 온 몸을 덮었다. 나루호도는 환하게 웃으며 제 팔을 그의 허리에 폭 둘렀다. 토닥이는 손길이 안락하다. 그의 어깨에 코를 부비며 한껏 안도감을 맛보았다. 평소의 그처럼, 따뜻하고… 그리고….
'…달콤한 냄새?'
달짝지근한 향기가 미미하게 감돈다. 그 냄새를 머릿속에 박아넣기도 전에 논다는 그의 얼굴을 떼어내고 볼을 만지작댔다.
"많이 기다렸지? 심심하진 않았어?"
"아… 전혀요!"
평소의 향이 아니었다. 그가 뿌리던 향수가 따로 있었는데. 전혀 다른 향이 났다. 갑자기 바싹 마른 입술이 신경쓰여 고개를 돌려버린다. 오늘은 왜 다른 향수를 뿌리고 온 거지? 방금 전의 긴 통화, 평소와 다른 향기. 미적지근하게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너무나도 작은 의혹이었다.
"전혀 심심하지 않았던 얼굴이 아닌데."
게다가 장난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환한 얼굴의 이 남자에게, 감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를 믿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마음 속의 충돌은 아직까진 감당할 만 했지만, 언젠가는 금을 만들어내겠지. 그러니 얼른 그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하지만 무서워서 물어볼 수가 없어. 악순환이 꼬리를 물고 물었다.
"그렇게 보였나요…? 논다 씨 착각이예요. 별 일도 없긴 했지만."
머쓱하게 헤헤 웃었지만, 그의 반짝이는 눈빛을 피해 가며 마음을 가다듬을 정신은 없었다. 저기, 있잖아요. 키쿠조우 씨. 저는 키쿠조우 씨가 누구와 그렇게 긴 통화를 했는지가 궁금해요. 그리고 그 전부터 저에게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도 서운해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혹시 저에게 하지 않은 말이 있나요? 목 안쪽까지 차오른 말들은 뱉어내지 못하고 삼켰다. 진심으로 기쁘다 느끼는 그의 표정을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었지, 무엇 때문에 그동안.
"논다 씨 말고, 키쿠조우 씨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네?!"
화들짝, 놀라며 발을 헛디뎠다. 논다는 여유롭게 나루호도의 어깨를 감싸 당기며 피식 웃은 뒤 말을 이었다.
"그야 나는 항상 류이치를 류이치라고 부르니까. 불공평하잖아?"
불공평하긴 뭘, 그런 건 강요하는 게 아니잖아요. 나루호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슬쩍 그의 손을 떼어냈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는 그를 보고 논다는 눈썹을 슬쩍 올리며 선선히 웃었다. 그것도 그렇네. 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으니 나름 동의해주는 것이었을까.
"그럼, 나루호도. "
"…!"
자연스럽게 가라앉은 공기가 온 몸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두 손으로 저의 왼손을 감싸 잡는 논다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진지하다. 뭔가 할 말이 있었던 걸까? 조금 경솔히 대답하고 행동했던 방금 전의 제 행동이 후회스러워졌다. 왜 그랬지, 조금 더 나은 대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화가 난 건 아닐까? 혹시 부추겨버린 건 아닐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원래 짜증내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그냥,"
맞잡은 손 위로, 둥그렇고 딱딱한 무언가가 얹혔다. 주먹쥐어진 손을 펴 보면, 작은 유리병. 투명한 액체가 담긴 귀여운 향수병을.
"선물이야. 류이치. 고르는 데에 조금 오래 걸린 것 같네."
이마에 가볍게 입술이 닿았다.
"그 여자가 준 병은, 버려도 돼."
눈을 휘며 웃는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달콤해서.
그는 그를 꽉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제 끄덕임을 볼 수 없는 것을 재차 깨닫고 목소리를 내었다. 네, 알겠어요. 의심해서 미안해요. 그리 말하니, '그럴 줄 알았어. 류이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니까.'하는 답이 돌아온다. 숨이 턱 막혀왔다. 연락을 하지 못했던 그 동안, 이 사람도 그런 생각을 해왔었구나.
"……고마워요, 키쿠조우 씨."
그저 마음을 담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Fin.
선물로 주는 향수의 의미는, '나를 기억해, 그리고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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