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랍고 새까만 머리카락이 미셸의 손가락 사이를 지나간다. 잔잔한 노랫소리가 들리는 리무진 속에서, 이리도 마음이 편했던 건 얼마만일까. 믿음을 나눌 사람이 함께한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었다.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근처를 돌아보았던 게 근 일주일 째. 자신도 덩달아 신나긴 했지만, 모든 게 새로웠던 한결 씨는… 더 피곤했겠지. 허벅지를 베고 누운 그의 머리카락을 한 번 더 쓸어 보며 후후 웃었다.

  "오늘은 멀리 나갔으니까."

  한결 씨가 좋아하는 바다. 밤바다를 보러 갔었다. 고요한 파도소리. 너울거리는 지평선. 해가 끝까지 떨어져 짙은 푸른빛을 발하는 하늘. 조용히 돌아가는 등대빛을 비추는 수면. 둥글게 각진 달이 일렁이도록 보이는 해변가에서 파스락거리는 모래알을 밟았다.

  [배우님!]

  환하게 웃는 그 표정이 마치 황홀경에 가까워 손을 내밀었더라. 따스한 손을 서로 잡고. 천천히 길을 거닐며 느긋하게 별을 보는 짓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던가. 하늘을 수놓은 빛의 자수가 시리도록 눈을 찔렀다. 이 시각이 허용되는 만큼 한결같은 태양을 응시하고 싶었다.

  빈 와인잔을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두었다. 표시등이 깜빡이는 것을 보니 곧 도착할 예정일까. 곁눈질로 점등하는 빛에서 무릎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눈을 감은 채 고르게 숨을 내쉬는 한결 씨. 고개를 약간 기울여, 당신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가.

  "한결 씨-…."

  작은 목소리로 귓가를 울렸다. 부동의 태양은 볼멘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잠에 빠져 있었다. 안 깨네, 정말 피곤했나 봐. 어떡한담. 제 볼을 습관처럼 톡톡 두드리던 미셸은 어깨를 가볍게 들었다 놓았다.

  "…쉿,"

  조용히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던 고용인에게 손짓을 하고는 대강의 의도를 설명했다. 오늘 입고 온 옷이 격식된 차림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비록 타인의 힘을 빌렸다지만, 어떻게든 그를 등에 업는 데에는 성공했다. 자신보다 체구도 작고, 제 힘이 약한 편도 아니니 큰일은 아니었지만 지나가는 길의 고용인들은 모두 안절부절못했다. 글쎄, 괜찮다니까.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안심시켜주려 했지만 혹여나 넘어질세라 카펫을 깔려던 걸 겨우 말렸다.

  침실까지 가는 걸음은 조금 멀다. 한결 씨, 당신과 며칠 간을 거닐었던 곳. 나의 저택, 당신의 성. 원하는 건 뭐든 말해줘, 하고 이야기하니 그저 웃었던 당신은 여전히 웃는다. 이름처럼 한결같이. 줄곧 바뀌지 않는 태도로. 일관성있는 그 품성이 미셸은 마음에 들었다.

  "한결 씨, 이제 편하게 누워. 베개도, 자…."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침대에 그를 눕혔다. 자세를 바꾸며 눈을 작게 끔뻑끔뻑 뜨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그. 이 이상 말을 걸면 그동안 쌓아 왔던 잠이 달아날까 싶어, 미셸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끌어 가슴께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 으레 하던 대로 가볍게 당신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잘 자, 후배님."

  소근거리자, 제 이마의 감촉을 확인하려는 듯 한결은 잠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잔뜩 졸린 눈동자가 미세하게 끔뻑, 끔뻑. 이불 속에서 손이 바스락대고는,

  "선배님도요…."

  미셸의 양 볼을 감싼 보드라운 손을 느끼기도 전에, 이마에 가벼운 감촉이 닿았다. 다시 잠에 빠져들듯 털썩 누워버리는 한결. 잠에 취해서였을까? 어찌 되었던, 그 행동이 퍽 사랑스러워서. 재차 이불을 정리해주었다.

  다시 뜰 태양을 기약하며. 나의 태양, 한결같이 영원하리라.

  새로 지은 대본을 머릿속으로 읊으며,

  잘 자, 한결 씨.

  한 번 더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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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D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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