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마츠 코헤이타 X 오하마 칸에몽]



그 열흘의 엇갈림 上






봄이였다. 인술학원 바깥의 인적드문 산에서는 벛꽃 봉오리가 슬슬 터지려 하고 있었고, 1학년들은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다. 코헤이타는 밤부터 새벽까지 계속했던 훈련을 마친 후 등목을 하고 오던 참이다. 왁자지껄하네. 좋다! 괜히 신나선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털며 시합에 난입한다. 발을 한 번 휘두르니 날아가선 골대를 가장한 막대기를 치고 돌아오는 축구공. 1학년들은 이런 그의 행동엔 익숙하다. 몇몇이서 코헤이타에게 소리를 질렀다.


" 나나마츠 선배-! 공 터져요! "

" 어엉! "

" 어엉! 이 아니잖아요! "


다들 깔깔 웃어넘긴다. 뭐, 터져도 다른 공으로 하면 되는 거니까. 공이 터지는 것은 한 때의 슬픔일 뿐이다. 코헤이타는 아이들을 이리저리 농락하며 태클을 모조리 피해내곤, 세 골 정도를 더 넣은 뒤 시합을 빠져나왔다. 그가 빠져나가도 시합은 계속된다. 한껏 소리높인 아이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그는 커다란 나무의 그늘로 가 앉았다. 휘유, 즐거웠다! 코헤이타 다웠다.

훈련 뒤였던데다가 몇 분 동안 신나게 달려댔지만 그는 힘든 티가 나질 않았다. 가쁜 숨소리는 찾아볼 수도 없었고, 땀이 조금 났을 뿐 몸이 피곤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다. 대단한 체력이다.


" 하치야! 여기 있었네! 찾았잖아. "


어라, 누구지. 그늘 속에 큰 대자로 누워 있던 코헤이타는 문득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살짝 떴다. 처음 듣는 목소린데, 어쩐지 익숙한 걸.


" 어라, 난 라이조인걸? "

" 응? 어라...아닌가. 미안. 하치야가 어디 있는지 알아, 라이조? "

" 나 사부로 맞아. "

" ... "


코헤이타는 대화를 듣다가 조용히 키득키득 웃었다. 재밌는 장난을 치네. 저 둘밖에 할 수 없는 장난이겠지. 대단한데! 그나저나 분위기 상 뭔가 중요한 말을 하는 것 같다, 이만 방으로 돌아갈까.

그는 빠질 때는 빠질 수 있는 소년이였다. 아무 생각없이 지내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의 고민도 있고 신념도 있으니까. 자리를 비켜준다. 아마 위원회 일이겠지. 또 학원장의 일이려나. 점점 둘에게서 멀어졌다. 사부로와 칸에몽의 대화소리는 두련두련해지더니 이내 들리지 않는다. 코헤이타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무심코 말한다.


" 아, 쵸지랑 닮았다. "


목소리.





-



밤중이다. 이상한 벌레가 우는 소리가 간간히 바깥에서 들려오는 방 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왠만큼 잠에서 깨지 않는 코헤이타가 이상하게도 눈을 떴다. 쵸지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놀란다. 쵸지는 간단한 짐을 싸고 있었다.


" 무슨 일이냐? 쵸지. "

" ...갑작스러운 발상으로. "

" 어...나는? "

" 도서위원회...책을 수입하러.. 아마도 열흘 정도. "

" 그렇구만. 잘 다녀오라고! "


조금은 일방적인 대화였지만 개의치않는다. 일상적인 대화였다. 코헤이타는 그가 일주일동안 방 안에 없다니, 조금 비겠구만! 하는 생각이다. 살짝 아쉬움도 가지고 있었다. 같이 나가도 괜찮은데. 도서위원회만인가. 내일 훈련은 누구랑 하지. 짐을 다 챙겨 어깨에 매는 쵸지를 향해 파닥파닥 손을 흔들어주었다. 쵸지는 굳은 얼굴을 하곤 손을 천천히 마주 흔들어준다. 흡족한 듯 싶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나간다. 그리고 차가운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탁.

끼리릭, 끼릭. 이상한 벌레소리만이 방 안을 채운다. 이젠 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잔디를 쓸어가는 소리도 들리는 것만 같다. 코헤이타는 다시 잠을 청했다.

음.

잠이 안 와.


" 좋아, 밤훈련 특훈이다! "


이불을 걷어차고 쿠나이를 집어들었다. 아마 쵸지가 없는 열흘간은, 혼자만의 참호파기가 계속될 것 같다. 코헤이타는 적적함을 느꼈다.




-



왜 이렇게 공허한가. 코헤이타는 인술학원에서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생각했다. 오, 오늘 밤은 달이 딱 반이 갈렸네. 적당히 밝고 좋구만! 이런 생각만 하던 건 아니였다. 앞서 말했듯 공허했다. 어째서인지 아무도 없는 방엔 들어가기 싫었다. 쵸지가 있던, 없던 간에 조용한 건 매한가지인 방에서, 사람 하나의 존재만이 없어졌는데도 이렇게 공허할 수가 있나. 코헤이타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문득 학원의 바깥쪽을 바라보니, 왠 남녀가 지나가고 있다. 제 또래처럼 보인다. 이런 깊은 밤에 뭐지. 혹시 변장한 닌자인가. 느슨하게 쥐고 있던 쿠나이를 고쳐잡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숨죽였다.


" 천천히 이 쪽으로 가면- "

" 고마워, 그러면 이제- "


딱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였다. 이 쪽 산을 지나면 마을이니까 아마 그 쪽으로 가는 건가. 대화를 듣자하니 닌자는 아니다. 딱히 암호를 쓰는 낌새도 없고, 차림새도 가리긴 가렸지만 꽤 고급진 옷감이다. 도망쳐 나온 건가? 하고 잘 돌리지 않던 뇌를 굴려보고 있는데.


" ...아. "


못 볼 꼴을 봤다. 둘의 형상이 가까워지더니 진하게 입맞춤을 하는 게 아닌가. 코헤이타는 바로 힘을 빼고 경계를 풀었다. 행실을 보니 막 결혼한 신혼 초기의 부부로군. 평소엔 별로 생각지도 않던 것이 갑작스럽게 보이니 남사스럽다. 하지만 자신도 인술학원의 학생이 아니였다면 저런 시절을 보내고 있겠지. 밤이라 그런지 감성적이게 된다.


" 결혼이라. "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문제는, 그 뒤로 쵸지의 얼굴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




나는 쵸지를 좋아하는 건가. 음. 그렇군. 코헤이타는 수긍했다. 다음 날 밤이였지만 여전히 달은 밝았고, 쵸지가 오기까지는 여드레가 남았다. 어쩐지 시간이 느리게 가네. 코헤이타는 심심했다. 오늘 밤의 달은 구름 뒤로 숨었다. 달빛은 가려졌지만 채 완전히 가리지 못한 은은한 것이 틈새로 모래알 떨어지듯 내려왔다. 어둠에 눈이 익은 코헤이타로써는 별로 상관없다.

그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나는 결혼할 생각은 없는데 쵸지를 좋아한다. 보통 결혼을 하면 그걸 하던가? 이불에 눕혀서 이렇게 저렇게. 초혼의 나이라면 이 정도는 배워둬야 한다며 수업을 들었지. 이미 알고 있던 녀석들도 있었지만. 뭐 상관없나. 그렇게 재미있었던 수업도 아니였고.

그런데 쵸지를 좋아하면 나도 그걸 하고싶어하는건가. 쵸지를 눕혀서? 이렇게 저렇게? 음. 모르겠다. 코헤이타는 머릿속으로 쵸지를 그렸다. 쵸지의 목소리가 갑자기 뇌를 울린다. 어라. 왠지 보고싶다. 쵸지.


...


" 심심해. 쵸지. 나한테 아무 말이나 해 줘. "


그에게 닿지 않는 목소리가 간밤의 허공을 갈랐다.





-




원하고 원했지만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쵸지가 일이 일찍 끝나 인술학원으로 별써 돌아온다던가, 코헤이타가 부름을 받고 쵸지를 찾으러 가라는 명령을 받는 것 같은 일 말이다. 학원장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오히려 코헤이타가 그의 방을 기웃거리자 또 공을 찾으러 왔냐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공을 찾으러 가긴 했었지만! 그래도 간 김에 물어볼 게 있었는데! 코헤이타는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이제 마음을 비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쵸지가 죽지만 않으면 됐지!

...

그래도 그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벌써 그립다.





-




며칠 정도 남았지? 엿새다. 조금 더 기다리면 오겠지. 오늘 밤은 밝았다. 코헤이타는 별이 박힌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은 조금 찌그러진 모양이였지만 깨끗했다. 달빛에 학원 내가 환하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도 되겠네. 하고 있던 참이였다.

타박거리는 발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어라, 밤중에 누구지. 나처럼 밤훈련을 하는 녀석인가! 아직 상대는 멀리 있었다.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오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내려갈 자세를 잡고 귀를 기울였다.


" 오, 칸에몽이잖아. "


중얼거렸다. 눈에 금방 띄진 않는 그의 치렁치렁한 갈색 머리카락이 풀려져 있는 채였다. 자다 깬건가. 훈련하러 온 건 아니네. 그는 멈춰 서더니, 숨쉬기 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몇 번 심호흡을 하고 쭈욱 기지개를 폈다.


" 달이 밝은걸- "


지나가는 말이였다. 칸에몽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얼마 전에 했던 생각이 뇌 속에서 다시 꺼내어진다. 오하마 칸에몽, 그의 목소리는 쵸지와 닮았다. 코헤이타는 가슴이 뛰었다. 멀리서 웅얼거리다시피 들었지만 전율이 일었다. 아, 닮았어. 아냐. 똑같아. 쵸지의 목소리다.

코헤이타는 무언가에 홀리듯 가볍게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가뿐하게 착지한다.


" 와악! 누, 누구...! 나나마츠 선배십니까? "


달이 밝아서인지 그는 금방 코헤이타를 알아보았다. 칸에몽은 느낌이 쎄했다. 평소에 보았던 나나마츠 선배는 항상 웃는 얼굴에, 이케이케돈돈하고, 수다스러웠는데. 지금은 이상하다. 아무 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칸에몽은 무심코 뒷걸음질쳤다.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째를 걸으려고 할 때, 코헤이타는 곧장 그에게로 다가가 적을 제압하듯 넘어뜨렸다. 몸으로 그를 깔아 고정하고, 위협하는 것처럼 손을 뻗어 그의 턱을 아래서 위로 감싸잡았다.


" 윽..서, 선배..? "

" 좀 더. "

" 무슨 말씀을..으윽, "

" ...왜 나왔는지 말 해 봐. "

" 바, 밤공기가 좋아서, 산책을....나왔, 습니다. "


칸에몽은 겁에 질렸다. 이렇게 진지한 그의 모습은 처음 봤으며, 그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자신을 위협하듯이 넘어뜨린 것에 소름이 돋았기에. 혹시 조금 전에 침입자라도 있었던 건가? 그래서 6학년인 나나마츠 선배가 그를 쫒다가 혹시 내가 변장한 침입자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온갖 걱정과 잡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점점 죄여오는 목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져서, 순순히 그에게 대답했다.


" 역시... "


코헤이타는 칸에몽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팔을 잡아 다시 일으켜주었다. 칸에몽은 사뿐하게 그를 잡아당겨버리는 그의 악력과 힘에 놀랐다. 이 사람, 엄청 힘 세잖아?.. 다른 선배들이 괜히 건드리지 않던 게 아니였어. 방금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남았다. 나, 뭔가 미움이라도 산 건가? 코헤이타의 얼굴을 슬쩍 보니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은 코헤이타가 칸에몽을 바래다주었다. 코헤이타는 칸에몽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서도 한참 닫힌 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흡족하게 웃은 뒤 제 방으로 돌아갔다.




-




" 어이! 오하마 칸에몽! "

" 네, 넵! "

" 어젠 덮쳐서 미안했다! 사과하지! 그럼 간다! "


이케이케돈돈! 하는 후렴구만 남기곤, 뒤로 체육위원회 아이들을 줄줄 끼운 채 밧줄을 잡고 달려나가는 코헤이타. 들어오다 말고 후진해버린 폭풍같았다. 멍해진 칸에몽을 곁에 두고 쿠쿠치 헤이스케가 쿡쿡 찌르며 넌지시 묻는다.


" 뭐야, 어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

" 아니, 뭐... 밤에 산책 나갔다가 나나마츠 선배가 갑자기 와서... 아마 침입자 같은 건 줄 아셨겠지. "

" 덮친 건 뭐야..? "

" 어-.. 쓰러뜨림 당했다고 해야 하나? 저 쯤에서. "


칸에몽은 자신이 어젯밤 있었던 곳을 눈짓으로 가리키고, 왼손을 세운 뒤 오른손을 위에서 아래로 움직여 왼손과 합장한 뒤 가로로 눕혔다.


" 이렇게? "


헤이스케는 수긍했다. '그' 나나마츠 선배라면 하급생들 사이에선 임무를 받았을 때 가장 무서울 것 같은 선배로 통했으니 짐작이 갔다. 아마 밤훈련이라도 하고 계셨겠지. 방금 전 칸에몽의 반응으로 봐서도 그랬다. 그렇게 놀랄 만한 등장이 아니였는데도 칸에몽은 화들짝 놀랐었다. 뭐 일은 좋게 끝난 것 같으니 다행이지만.





-





" 칸에몽. "

" 응? 뭔데? "

" 이거, 네 앞으로 온 것 같은데. "


쿠쿠치 헤이스케는 잘 채비를 하다 말고 그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얼떨결에 받아 보니 묵직한 쿠나이다. 어라. 이게 왜 내 앞으로. 하는 고민도 잠시, 손잡이 쪽에 쪽지가 묶여 있다. 쪽지의 겉엔 비뚤하게 '오(お)'가 적혀 있다. 쿠쿠치 헤이스케와 오하마 칸에몽이 있는 방에서 '오'가 적힌 쪽지가 왔다면.. 자신에게로 온 게 맞다. 헤이스케는 미심쩍은 눈으로 쿠나이를 봤지만, 다시 이불정리를 시작했다. 칸에몽은 펴다 만 이불에 주저앉아 쪽지를 펴 보았다. 단단하게 묶여 있어서인지 풀고 나니 손가락이 아려 왔다.


' 오늘도 밤산책 '


간단한 글씨였다. 오늘도 밤산책을 하라는 뜻인가? 이제 누가 보낸지 짐작이 대강 간다. '오늘도'라 했으니 자신이 어제 밤산책을 나갔다는 사실을 아는, 방 안에 아무도 모르게 쿠나이를 던져놓을 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 나나마츠 선배다. 무슨 말이라도 하실 게 있는 건가. 역시 뭔가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거지..? 두려움에 심장이 떨렸다. 헤이스케에게 말해두고 조용히 나가야겠다. 혹시 내가 잘못되면... 뒷산에 묻어줘...하는 유언도 생각해봐야지. 부질없는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




" 오, 왔구나. 칸에몽. "

" 아, 네,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

" 그냥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

" ..? "


코헤이타의 뒷말은 중얼거림이여서 칸에몽에게는 닿지 않았다. 코헤이타가 칸에몽에게 손짓한다. 가까이 오라는 뜻이다. 코헤이타는 나무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얼굴이 나뭇가지의 그림자에 가려 어두웠다. 저번처럼 갑자기 쓰러뜨려지는 건 아니겠지?.. 칸에몽은 조심스럽게 그에게로 다가간다.


" 너, 생각보다 키가 작구나. "

" 그, 그, 그야 당연하죠, 제가 후배니까요. "


흐음. 하고 제 턱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코헤이타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진짜 뭘 하려고 부른 걸까. 절로 목소리가 떨린다. 코헤이타의 손이 칸에몽의 목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상냥한 손길이다. 칸에몽은 움찔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이번엔 그리 세게 잡으실 것 같진 않다. 하고 느꼈기 때문에.

그의 손가락은 점점 올라와 턱 바로 밑까지 닿았다. 그리고 엄지로 입술을 꾹 누른다. 멍하게 벌려져 있던 입술이 그 촉감에 재빨리 닫혔다. 칸에몽의 불안한 눈빛이 아래서 위를 쳐다본다.


" 칸에몽. "

" ..네? "

" '나나마츠 코헤이타'라고 말해 봐. "

" 제가 선배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

" 괜찮으니까 해 봐. 얼른. "


코헤이타는 진지했다. 칸에몽은 여전히 불안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젠 짐작도 가지 않는다.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라니. 입에 채 익지도 않은 그 이름을, 칸에몽은 입에 우물우물 담았다.


" 나나마츠.. 코헤이타. "


여전히 입술 가까이에 있는 코헤이타의 엄지에 칸에몽의 따뜻한 입김이 닿는다. 코헤이타는 그제야 평소대로 웃었다. 좋네, 고마워!

칸에몽은 여전히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날도 코헤이타는 칸에몽을 바래다주었다. 칸에몽은 방에 돌아가, 자리에 누워서 그의 행동의 의미를 한참동안 생각해보았지만, 의미를 모르겠다. 하고 풀썩 누워 자 버렸다.






-





그는 다음 날, 또다시 쿠나이를 보내왔다. 헤이스케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먼저 말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걸까. 아니면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어찌 되었든 자신이 또다시 오늘 밤에 밤산책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초반까지는 어제와 똑같았다. 바깥으로 나가 걸었다. 커다란 나무에 다다르자, 나무기둥에 기대어 서 있던 나나마츠 선배가 가까이 오라 손짓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이번에도 그 큰 키로 내려다본다. 눈길을 피했다. 그가 한 손으로 칸에몽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손에 힘을 빼고 가슴께 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목덜미를 타고 올라오는 손가락. 또 입술에 손을 대는 걸까. 칸에몽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이 행동은 무엇을 원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어... "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엄지와 검지로 턱을 잡고 올려, 코헤이타를 똑바로 쳐다보게 한다. 사실 칸에몽은 코헤이타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댈 때부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망설였다. 그래서인지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었던 터라 그런지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올곧은 눈빛이 마주쳤다. 곧게 뻗은 시선이 코헤이타를, 칸에몽을 마주보았다. 칸에몽은 입술을 굳게 닫았다.

코헤이타는 천천히 얼굴을 가깝게 가져다댔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칸에몽의 동공이 흔들린다. 뒤로 내빼려고 했지만, 코헤이타의 다른 손이 머리 뒤쪽을 감싼 채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촉감으로 전해지는 입술의 느낌은, 말랑했지만 건조하고, 조금 거칠기도 했다. 코헤이타는 칸에몽의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봉오리가 터지듯 가볍게 열린 입술은 천천히 벌어진다. 틈이 느껴지자 마자, 코헤이타는 고개를 살짝 틀곤 고개를 더욱 더 밀착한다.

혀가 입술께를 핥고 들어갔다. 칸에몽의 몸이 순간 굳는다. 그의 온 몸의 신경이 입술을 향했다. 무심코 참았던 숨이 점점 막혀오기 시작한다. 제 입 속으로 들어온 혀를 내빼며 피하느라 입에 마비가 올 것만 같다. 코헤이타는 능숙하게 숨을 살짝 들이쉬었다. 그리고 그의 혀를 빨아들인다. 닿지 않으려 했던 노력이 무색하게, 둘의 혀는 금세 얽힌다. 축축하고 말캉한 느낌이 칸에몽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따금 넘쳐나는 침을 가까스로 삼켜냈다. 이제는 괴로움의 신음소리가 점점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으, 으음, 흣. 따위의 소리가 혀놀림을 따라 귓바퀴를 돌았다. 코헤이타는 하릴없이 그의 입속을 헤집었다. 칸에몽은 팔로 코헤이타를 조금 밀어내며 말했다. 


" 나, 나나마츠 선..배, 이건...무슨.. "


코헤이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힘을 주어 그에게 밀착했다. 끈적한 소리가 나무 아래에서 가라앉는다. 밀착된 얼굴이 떨어진 것은, 혀를 자신의 입 속으로 빨아들여 살짝 깨물어준 것을 끝으로 손에 힘을 풀었을 때였다. 칸에몽은 진이 빠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옷소매를 들어 조금 흘러내린 침을 닦아내었다. 코헤이타는 그런 그를 보고, 손을 뻗어 이번엔 볼을 감싸쥔다.


" 오하마 칸에몽. "

" ...네. "

" 고맙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

" ?.. "


여전히 의중을 모를 말이였다. 칸에몽은 찜찜해졌다. 방금 했던 행위는 그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일까. 어쩐지 그것을 알기엔 두렵다.

그리고, 슬퍼질 것만 같았다.


코헤이타는 오늘도 그를 방으로 바래다주었다.


나카자이케 쵸지가 돌아오기까지 앞으로 나흘.




- 上 Fin

Posted by MD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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