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헤타키]기다림

닌타마 2015. 9. 27. 00:34

*twitter @1y132_nin 밍 님 리퀘




[ 나나마츠 코헤이타 X 타이라노 타키야샤마루 ]





기다림






전륜이 바람을 가르며 날았다. 공간의 한 켠을 베어내듯 순식간에 나무기둥으로 흘러가 경쾌한 파열음을 낸 전륜은 작은 진동을 울리며 그곳에 박혔다. 타키야샤마루는 손가락을 척 이마에 대고 당연하다는 듯이 웃어보인다. 그 웃음을 보여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다.


" 오늘도 좋은 상태구나, 린코! 역시 나의 전륜 실력은 학원의 넘버원이라 불릴 만 해, 이른 아침에도 조금의 흠 없이 목표물에 명중하다니! 나의 아름다운 손가락과 예쁜 린코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지, 음. 그렇고말고. "


들을 사람도 없었지만 타키야샤마루는 평소대로 누군가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곤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는다.


" 오늘 나의 목 상태도 대단히 좋구나! "


기분이 좋아 보인다. 상기된 얼굴과 쉴 새 없는 입. 그리고 자신이 연구했던 멋진 포즈까지 몇 번 취해 본다. 모르는 사람이 보고 있노라면 저건 뭘 하는 사람인가…. 하겠지만, 인술학원에서는 낮설지 않은 풍경인데다가, 익숙하니 그 누구도 신경쓰지않는다. 타키야샤마루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자신의 활약상을 본 사람이 없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어깨를 으쓱한다. 아쉽구나, 나의 멋있는 모습을 놓치다니!


" 자, 린코. 그럼 다시 나의 품으로… 어라. "


나무 가까이로 걸어가 그의 전륜이 있었던 자리에 손을 뻗었을 때였다. 분명 전륜이 박혔던 자리도 선명하게 남아 있고, 충격으로 떨어져나간 나무껍질도 땅에 몇 조각 흩어져 있는데, 전륜이 없어져 있다. 사라졌어? 린코가 드디어 제 발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인가?

…아니야, 누군가가 가져갔을 테지. 타키야샤마루는 눈을 찌푸렸다. 사실 전륜을 던지고 나서부터 신경쓰이는 게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가져갔다는 것은 확실했다. 물론 누가 가져갔는지도 말이다. 타키야샤마루는 나무에 등을 기댄다.


" -코헤이타 선배. 돌려주세요. "

" 이야- 드디어 불러줬네! "


나나마츠 코헤이타, 인술학원의 6학년 로반이자 타키야샤마루가 속한 체육위원회의 위원장이 그의 앞으로 떨어져내려왔다. 멋들어지게 착지한 뒤 타키야사마루의 전륜을 손가락에 끼워 돌려 보이는 코헤이타. 타키야샤마루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푹 쉰다.


" 언제까지 그 위에 있을 작정이셨나요. "

" 네가 불러 줄 때까지! "


싱글벙글. 티 없이 웃는 그의 얼굴에 감히 볼멘소리를 내뱉을 수가 없다. 타키야샤마루는 픽 웃어버린다. 짝다리를 짚고 서 있던 코헤이타가 다가와 타키야샤마루의 이마를 검지로 콕 찔렀다. 그의 검지에 걸려 있는 전륜이 눈 앞에서 흔들린다. 타키야샤마루는 두 손으로 코헤이타의 손을 잡고 전륜을 빼내어 받았다.


" 이렇게 하시는 건 위험하다고 했는데. 코 베입니다. "

" 뭐 어때. 사소한 건 신경쓰지 마. "


코헤이타는 타키야샤마루에게로 고개를 숙인다. 쪽,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받았다. 타키야샤마루는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손사래를 치며 코헤이타의 얼굴 앞에서 벗어난다.


" 누가 보면 어쩌시려고요? "

" 신경쓰지 말라니까 글쎄. "

" 아침부터…. 참. "


타키야샤마루의 눈꼬리가 화난 듯이 올라갔지만, 화가 난 게 아니라는 것을 코헤이타는 알고 있다. 그는 바로 허리를 숙여 타키야샤마루를 번쩍 들어올려버린다. 그대로 타키야샤마루를 둘러맨 채 달리는 코헤이타. 타키야샤마루가 그에게서 곧바로 벗어나려고 힘을 주지만, 될 리가 없다.


" 서, 선배…! 진짜 누가 본다구요! 내려주세요! "

" 이대로 운동장까지 전력질주다! "


코헤이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가는 길마다 울려퍼졌다. 방금 일어난 일학년 아이들이 둘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도 타키야샤마루 선배는 고생이시구나.


-


바람이 선선하게 분다. 체육위원회는 오늘도 한창이다.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참호를 파는 코헤이타와 그를 따르는 후배들. 타키야샤마루도 사이에 껴선 식은땀을 흘리며 쿠나이를 흙에 꽃아넣는다.


" 좋-아! 여기서 쉬는 시간! "


이미 운동장 한 바퀴를 빙 둘러 둥그런 참호를 완성시킨 코헤이타가 불쑥 참호 바깥으로 뛰어나오며 외쳤다. 멀리까지 가 버린 산노스케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자리에 주저앉아버렸고, 시로베도 쿠나이를 던져버리며 그대로 누워 버린다. 킨고는 드디어 끝났다는 듯이 탄성을 지르며 쭈욱 기지개를 편다.


" 타키야샤마루! "

" ㄴ…네! "


소매에 묻은 흙을 털고 있던 타키야샤마루를 코헤이타가 부른다. 잽싸게 그에게로 뛰어가는 타키야샤마루. 아직 호흡이 채 진정되지 않았는지 헉헉댄다. 코헤이타는 허리에 손을 얹고 타키야샤마루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정말 진득한 체력이야. 타키야샤마루는 헛웃음을 지었다. 대단하다는 생각에서 우러나온 웃음이였다.


" 오늘 시간 있냐? "


코헤이타는 타키아샤마루에게 가까이 다가가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물었다. 타키야샤마루는 꼼짝없이 그의 손길을 받으며 몸을 굳혔다. 코헤이타 선배가 흙을 털어 줬어…? 얼굴에 열이 조금 올랐다.


" 오…오늘이라면 한가합니다! "

" 같이 외출할까 해서 말이지. "

" 그거라면 당연히…! "


타키야샤마루는 활짝 웃으며 두 주먹을 가슴 앞에서 꽉 쥐었다. 선배와 외출이라. 뭔가 재밌는 걸 하시려는 걸까.

코헤이타는 이를 보인 채 활짝 웃으며 타키야샤마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말했다.


"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참호파기 마저 개시다! "

" 네? "

" 이케이케돈돈! "

" 참호파기를 중지한다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요…. "


이미 이케돈을 외치며 참호 속으로 뛰어들어가버린 코헤이타에게 타키야샤마루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타키야샤마루는 놓아버리려던 쿠나이를 고쳐쥐고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계속 팔 수 밖에 없지. 위원장의 말씀이시니 말이다.


" 약을 지어 먹어야 할까…. "


몸이 남아나질 않는 기분이다.



-



" 산노스케, 시로베, 킨고. 수고했다! 이만 들어가 쉬도록! "

" 수고하셨습니다 나나마츠 선배! "


입을 모아 구호를 외치는 후배들. 땀 범벅이지만 이제 익숙한 생활이라 느끼는지 상쾌한 얼굴이다. 팔을 주물거리며 우물로 뛰어가는 그들을 보며 타키야샤마루는 허리에 손을 올렸다. 드디어 오늘 활동은 끝…. 하지만 코헤이타 선배의 눈빛을 보면 아직 뭔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든다.


" 타키야샤마루! 너도 물이나 마시고 와. 당고 먹으러 가자! "

" 당고였습니까? "

" 어엉. 문제있나? "

" 아뇨. 문제라기보다는…. 일단 준비하고 나오겠습니다! "


외출복, 외출복. 그저 잠시 볼일을 보러 나가는 데에 데리고 가는 줄 알았더니, 같이 당고나 먹으러 가자는 호출이였다. 이건 그… 함께 놀자는 게 아닌가!

타키야샤마루는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외출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리 기대되면 어쩌자는 것인가. 타키야샤마루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입을 가렸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나나마츠 선배와 단둘이서 놀러…!


재빨리 환복하고,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나나마츠 선배는 이미 코마츠다씨에게 외출증을 보여준 뒤였다. 타키야샤마루는 얼굴을 비집고 나오려는 미소를 참으며 그에게로 달려갔다.


" 저, 저 왔어요! "

" 급하게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


코헤이타는 씨익 웃으며 타키야샤마루의 옷매무새를 바로잡아주었다. 타키야샤마루는 코헤이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옷 정리…. 방금 자신의 옷에 묻었던 흙을 털어준 코헤이타가 생각난다. 사소한 일은 신경쓰지 않는 게 원칙이지 않았어요? 대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돌아올 대답이 예상된다. '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괜히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가렸다.


" 문제 있나, 타키야샤마루? "

" 아뇨…. 가요. 얼른. "


타키야샤마루는 그에게 질세라 구겨져 있는 코헤이타의 소매를 잡아 펴 주면서도 재촉했다. 자리라도 옮겨가야 터져나올 것 같은 감정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코헤이타는 소매를 잡고 있는 타키야샤마루의 손을 보고 또 웃어보인다.


" 고마워! 그럼 갈까! "


이 사람의 웃음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타키야샤마루는 식지 않는 얼굴을 감싸쥐고 발걸음을 옮겼다. 온몸에서 화끈거리는 열이 뿜어져나오는 것만 같다. 귓속에서 심장소리가 울렸다. 잠시 맞닿았던 코헤이타의 손이 전기라도 튄 양 찌르르했다. 입을 꾹 다물고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그의 등을 따라 달려갔다.


" 같이 가요, 나나마츠 선배! "



-



" 타키야샤마루. "


다 먹은 당고 막대기를 씹으며 타키야샤마루의 무릎을 베고 누운 코헤이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타키야샤마루는 입에 남아있는 당고를 가까스로 목 언저리에 밀어 넘긴 후 대답한다.


" 뭐, 뭔가요. "


제대로 맛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타키야샤마루는 눈물을 머금고 막대기에 남아있는 나머지 당고를 바라보다가 코헤이타를 바라본다.


" 나나마츠 선배…? "


그의 얼굴이 진지하다. 타키야샤마루는 들고 있던 당고를 접시 위에 도로 놓은 뒤 코헤이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 어디 아프세요? "

" 아니, 그런 건 아니다! "

" 으앗, 소리치실 필요까지야…. "


타키야샤마루는 화들짝 놀라 손을 도로 허공으로 올렸다. 으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코헤이타. 정말 괜찮으신 걸까? 쵸지 선배에게 듣기로는, 나나마츠 선배는 진짜 아플 때는 아무 말도 안 한다던데. 그 때는 잘 돌봐줘야 한다고 하셨지만….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코헤이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내가 졸업한 뒤 말이다. "

" 졸업… 인가요. 네. "


갑자기 무거운 단어가 그에게서 튀어나왔다. 졸업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였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겠지. 공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답지않게 꾹 다물어진 코헤이타의 입술이 덤덤하게 움직인다.


" 졸업한 뒤…. 내가 죽어버리면. "

" …. "

" 전쟁터에서 내 몸까지 모조리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할 거냐. "

" …. "


타키야샤마루는 코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좋은 주제는 아니였지만 곰곰히 생각한다. 그리고 손을 뻗어 코헤이타의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한 가닥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살아있기라도 한 양 쓰다듬는다.


"  …선배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찾아 갈 거예요. "

" 내 몸이 토막나있어도? "

"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


타키야샤마루는 몸을 숙여 코헤이타를 감싸안았다. 조용히 그의 품에 귀를 대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고요한 진동. 살아있다는 그 증거가 언젠가 없어질 거라고 말하는 그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 지 몰라 입을 우물거린다.


" 그럼 혹시…. 내 시체를 찾았거나, 무덤을 찾는다면 말이야. "

" …네. "

" 울어라. 아주 많이. 지금 네 표정처럼, 울고 싶은 만큼 울어. "

" …. "

" 그리고 눈물로 네 슬픔이 다 빠져나갔을 때는 나를 잊는 거다. 알았지? "


타키야샤마루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걸까? 제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지만 이미 표정은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코헤이타가 타키야샤마루를 보고 피식 웃으며 손을 잡아 깍지를 낀다. 그리고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딱 하루만 슬퍼하는거야. 그리고 그 뒤로는…. "

" …. "

" 알았지? 사소한 건 신경쓰지 않는 거다. "

" 사소하지 않은 걸요. "

" 아냐. 내 죽음을 슬퍼하는 건 사소한 거다. "

" 그럼 뭐가…! "

" 내 죽음으로 인해 네 인생이 슬퍼지는 일은 없길 바란다는 거다. "


타키야샤마루는 입을 열었다가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아냐, 그렇지 않아요. 그건 대단히 이기적인 게 아닙니까. 나나마츠 선배.


" 타키야샤마루. "

" …. 네. "

" 그냥, 알았다고 하면 된다. 내 말을 지킬지, 지키지 않을 지는 네 마음이야. "

" … 알았어요. "

" 옳지. "


코헤이타는 그제서야 웃었다.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타키야샤마루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잖아? 하고 장난스럽게 귓속말한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붉어지고, 노을이 진다.


" 그러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인술학원에서. "

" 그래. 그리고 네가 졸업하면 데리고 가야지. "

" …꼭 오셔야 해요. "


타키야샤마루는 코헤이타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가볍게 맞닿은 입술이 둘을 감쌌다.


.

.

.


" 돌아갈까. "

" 네. "


먹다 남은 당고를 들고 발을 옮긴다.

타키야샤마루는 눈을 감고 못다한 말을 곱씹었다.


계속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졸업이든, 뭐든지.

당신이 찾아올 때까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말이예요.



Fin.

Posted by MD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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