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라이/쌍닌]


옷장





후와 라이조는 평범한 가정의 아이였다. 모난 성격도 아니였으며, 매사에 상냥하고 남을 잘 돕는 소년이였다. 항상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한참동안 고민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였지만 말이다. 아직 혼자 생각하는 데엔 서툰 열한 살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소년의 부모는 집을 잘 비우는 편이였다. 덕분에 그는 옆집에 살던, 같은 나이의 우등생이였던 쿠쿠치 헤이스케와 간간히 놀았다. 서로 번갈아가며 자신의 집에 초대하기 바빴다. 소년들의 부모들도 안심했다. 둘은 꽤나 얌전했으니 딱히 걱정할 일도 없겠다고 생각했을 테지.

라이조와 헤이스케. 두 소년은 자주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 한 사람이 숨으면 한 사람이 찾고. 찾으면 다시 역할을 바꾸고. 반복했다. 이제 그 놀이가 점점 지겨워질 즈음이였다. 라이조는 처음으로 부모님의 방으로 들어가, 커다란 옷장 안에 숨었다. 금방 세탁한 양복 따위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소년은 옷장 안에 자리를 잡고 쭈그려 앉았다. 헤이스케는 내가 여기 있는 줄 모르겠지. 조용히 웃었다. 입을 가리고 숨죽여 미소짓고 있을 때였다.


'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


머릿속에서 울리는 누군가의 말소리에 화들짝 놀란 소년은, 옷장 벽면에 몸을 단단히 기대고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 뿐이였다. 라이조는 놀랐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들렸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꽤나 다정한 목소리였으니까.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 누구야? 헤이스케..? "


라이조가 조용히 속삭였다. 울리는 목소리는 금방 답해주었다.


' 내 이름은 하치야 사부로. 옷장 안에서 살아. 항상 네 목소리를 듣고 있었지. '


라이조는 가슴이 뛰었다. 헤이스케의 장난이 아니다. 목소리가 달라. 새로운 친구다. 사부로. 그는 항상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오른 등줄기가 전율을 일으켰다.


" 옷장 안에서 사는거야? 모습을 보여 줘. 사부로, 너는 어떻게 생겼어? "

' 나는 네 오른쪽에 있어. '


라이조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조금 희미하게 보이는 아이가 옆에 쪼그려앉아 있는 게 아닌가. 찬찬히 뜯어보니 머리모양이나 옷차림이 옛 사람처럼 조금 이상했다. 머리는 덥수룩한 데다가 길게 묶은 채였고, 옷은 품이 넓으며 흐물흐물했다. 문득 동화책에서 보았던 닌자복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년은 신기한 듯 사부로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사부로는 그에게 곤란한 듯 웃어보이더니, 쉿, 하는 손짓을 한다.


' 헤이스케가 널 찾으러 왔어. 난 들어갈 테니까, 다음에 또 와. '


연기가 퍼지듯 사부로는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옷장 문이 환하게 열어젖혀진다. 어두웠던 옷장 안을 햇빛이 가득 채운다. 라이조는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눈꺼풀 사이로 헤이스케가 웃는 얼굴이 보인다.


" 라이조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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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손 끝에 닿을 듯 하면서도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라이조의 시간도 그렇게 손가락 사이로 빠르게 지나갔다. 열두 살.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든 라이조는 여전히 옷장을 좋아했다. 사부로. 그를 처음 만난 이후로 라이조는 옷장 안을 한참동안 지켰다. 어둡고 침침한 옷장 속에서 가만히 쭈그려 앉아있노라면 항상 찾아오는 사부로가 비밀스러운 친구라도 되는 듯이 좋아했다. 헤이스케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가끔 찾아오는 부모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부로. 그의 존재에 대해 라이조는 기쁨을 느꼈다.

문득 라이조는 학교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같은 반의 반장인 오하마 칸에몽과 친하게 지내고 있던 소년은, 문득 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옷장 안에서 사는 도깨비나 귀신같은 걸 알아? 칸에몽은 한 쪽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고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해보는가 싶더니, 검지손가락을 곧게 뻗으며 책을 가리킨다. 찾아보면 되지!

결국 칸에몽의 손에 이끌려 도서실로 온 라이조는, 분류표를 찬찬히 살피며 신화와 관련된 목록을 찾았다. 의외로 이런 데엔 흥미가 있었던지, 눈을 반짝이며 칸막이 사이를 돌아다니는 칸에몽이 분주해보인다. 라이조도 그를 따라 칸을 훑으며 도서실을 몇 바퀴 돌았지만, 영 찾기가 어렵다.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으면 오기가 생긴다. 칸에몽과 라이조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 둘이서 도서실엔 무슨 일이야? "


헤이스케다. 손에는 문제집 한 권이 들려 있다. 칸에몽이 앞으로 나서서 대답했다.


" 아니, 뭔가 찾아볼 게 있는데 잘 나오질 않아서. 귀신이나 도깨비 같은 걸 찾아보고 있는데 말야. "

" 그런 건 그냥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되는 거 아냐? "


아. 라이조와 칸에몽은 동시에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런 간단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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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조의 학교 이야기를 듣던 사부로가 작게 웃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재촉한다.


' 그래서? 나에 대한 건 찾았어? '


고개를 소년에게로 내밀어오며 묻는 그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선명해보인다. 라이조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그래서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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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실엔 왠일? "

" 너야말로. 생물부장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

" 먹이 주문 중이지. 곤충들도 좋은 먹이를 먹여 줘야 잘 자라는 거야. "

" 아-.. 네네.. 라이조, 가자. "


생물부장인 타케야 하치자에몽이 컴퓨터실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피차 잘 오지 않는 곳에서 만난 터라 딱히 할 이야기는 없었지만 말이다. 칸에몽은 그의 곤충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듣기 싫은 티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라이조가 그를 따라가 앉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점차 커진다. 경쾌한 소리가 나며 모니터 화면이 켜졌다. 얼른 검색해봐. 뭐가 나오나. 아, 나도 알고 있으니까 재촉하지 좀 마. 작은 손이 키보드 위를 꾹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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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별다른 건 안 나왔지만.. "

' 아쉽네. 나에 대해서 알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

" 너도 너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하나는 찾았어. "

' 뭔데? '

" 어떤 물건에 속해 있는 귀신은, 그 물건이 부서지면 함께 부서져 사라진대. "

' 음- 그거 재밌네. '


사부로는 머리 뒤로 한껏 기지개를 피더니, 뒷깍지를 낀 채 옷장 바닥에 누웠다.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 그렇군. 하고 중얼거리며.

어쩐지 그 모습이 조금 외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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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조는 열세 살이 되었다. 이제 어느 중학교로 진학할지도 슬슬 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학업 문제로 소년의 부모도 종종 그에게 찾아와 유학 이야기를 꺼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곧장 이사가자는 내용이 한결같았지만, 나쁘진 않았다. 다만, 옷장을 이곳에 두고 가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저 옷장은 언제 만들어진 건가요? 라이조는 오랜만에 찾아온 부모와 밥을 먹다 말곤 물었다. 하지만 두 분의 표정을 보니 두 분도 자세히 알고 계시는 것 같진 않았다. 어쨌든, 생각보단 오래 된 옷장이야. 하고 어림짐작한 답변만 들었을 뿐. 라이조는 이 이상 옷장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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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방학이야. "

' 바깥은 많이 추워? '

" 응. 입김이 나와. 내일이면 눈도 온댔어. "

' 눈이라. 예쁘겠네. '

" 응... "


사부로는 라이조에게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마주댔다. 닿을 듯 말듯 한, 자신과 닮은 하얀 눈동자가 마주보자, 소년은 화들짝 놀란다. 뭐, 뭐야. 왜.


' 걱정거리가 있어? '


라이조는 정곡을 찔린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제 무릎에 얹혀진 반투명한 사부로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덮었다.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근 듯한 느낌이 났다.


" 이사를 가야 해. "

' 새로운 곳으로 가는 건 좋은 일인걸. '

" 너를 두고 가야 해.. "

'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네. '


사부로는 금방 포기했다. 자신을 더 이상 보지 못해도 괜찮은 걸까. 라이조는 조금 서운해졌다. 나, 너와 떨어지기 싫어. 잡히지 않는 손 안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사부로는 그의 앳된 주먹을 보고 똑같이 쥐어 보인다.


' 언젠간 찾아 올 거잖아? '


왜인지는 모르겠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라이조는 부정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난다. 마주 보고 쥔 두 주먹을 서로 잡고 있는 것 같아 코가 시큰해진다. 형체가 없는 그를 끌어안고 펑펑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응. 꼭 찾으러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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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옮기는 내내 라이조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옷장을 돌아보았다. 너무 오래된 것이기도 했고, 디자인도 별로라며 부모가 이삿짐에서 제외시킨 그 옷장은 처연하게 텅 빈 방을 지키고 있겠지.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려 줄 것이라 믿었다. 소년은 주먹을 쥐었다.



' 나를 잊지 말아 줬으면 해. '



닿지 않았지만, 스쳐 지나간 입술에서 따뜻한 기운이 왔던 건 착각이였을까.



" 절대 잊지 않을 테니까. "



라이조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작고 짧은 끈이 달린 물건을 꺼냈다. 책갈피다.



' 주황색이네. 예쁘다. '



" 응. 그러니까 찾으러 올게. "



사부로는 라이조에게 손을 흔들었다. 옷장 문을 닫고 뒤로 하는 순간, 눈시울이 절로 붉어진다. 3년 동안의 비밀 친구는 그렇게 이별했다. 언제 만나자, 어디서 만나자. 하는 기약도 없이. 연기처럼 퍼져나가선 몸을 휘감아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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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쉴새없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라이조는 어느 새 어른이 되었다. 서류를 처리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전화로 업무를 지시하는, 전형적인 어른.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찜찜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귓가를 간질이며 말했다.


' 언젠간 찾아 올 거잖아? '


" 응. 찾으러 갈 거야. "


생각이 날 때마다 쉴새없이 중얼거리고 되뇌였다. 하지만 너무 바빴다. 이제 그는 자신이 원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피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미 어른의 세계에 물들어 돈이 빠듯했다. 가야 해, 가야 하는데. 애달픈 희망만이 심장을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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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왔다. 초등학교 동창회다. 주최자는 칸에몽. 라이조는 숨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다들 오랜만이야, 헤이스케! 하치자에몽도 왔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일 이야기, 연애 이야기, 부모님들 이야기, 다른 친구들 이야기. 끊임없이 입이 움직여진다. 쉴새없이 술이 들어간다. 그러던 와중이였다.



" 그러고보니, 네 집, 다 타버렸었지. "

" 맞아. 난리도 아니였지, 그 땐. 그래도 다들 이사 간 후였으니까. "



술기운에 파뭍힌 가운데 무언가가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찬물로 등목을 한 듯 머리가 확 깬다. 라이조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야? 갑자기 싸늘해진 그의 목소리에 모두 당황한 듯 말끝을 흐렸다. 칸에몽이 차근차근 이야기 해 주었다. 소년, 라이조가 이사를 간 후 한 달 즈음이였다고 한다. 이유모를 불이 났었는데, 의외로 큰 불이라 다들 대피하고 큰 난리였었다고. 아직도 원인의 불씨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누군가의 담배 꽁초 때문일 거라고 칸에몽은 덧붙였다. 헤이스케가 거들었다. 그래, 맞아. 이층 윗집에서 세들어 살던 아저씨가 엄청난 골초였었거든.



" 그런데 그 화재 현장, 아직도 못 고쳤잖아? "

" 그래. 오늘 지나올 때도 봤는데 그대로더라고. 왜 그랬더라. "

" 공사를 시작할 때마다 사고가 터져서 아예 관뒀지. 내가 그 쪽 복구담당 관리자였거든. "

" 어라. 그랬냐. 하긴 넌 예전부터 성적은 상위권이였으니까, 이해되는구만. "

" 완전히 포기한 거야? "

" 그렇지 뭐. "



이야기가 계속되는 와중, 라이조는 한 마디도 끼어들지 못했다. 옷장. 사부로. 사부로, 그다. 그 때문이였다.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가 사라지진 않았을까? 심장이 불안감으로 둥둥 북을 울렸다.



" 있지, 나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



라이조는 마음이 급해진다. 뭐? 아직 안줏거리도 많이 남았고 술도 많이 있는데! 칸에몽이 라이조를 잡았다. 야, 야, 됐어. 저러는 거 보면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각났겠지. 라이조의 표정을 보고 조금 눈치챈 듯 하치자에몽이 손사래를 쳤다. 헤이스케는 말없이 술을 들이키며 눈짓으로 라이조를 배웅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다수결. 칸에몽이 졌다. 라이조는 깔끔하게 자리를 박차고 옛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막대기가 듬성듬성 꼽힌 사이에 둘둘 감겨진 노란색 테이프. '위험'이라는 검은 글자와 새빨간 삼각형 느낌표 표시가 가득한 옛 집. 다리를 들어올려 테이프를 건넜다. 발에 밟히는 것은 치우다 만 검은 잔재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다리를 타고 귀에 조용히 쌓인다. 사부로. 맞지? 내가 가고 있으니까, 기다려. 조금만. 가볍게 신고 왔던 진한 남색의 운동화에 검은 재가 속속 뭍어난다. 얼마 전에 산 거긴 한데, 상관없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바깥과 같이 테이프로 둘둘 말아올려진 떨어져나갈 것 같은 대문과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외벽이 스산하다. 어쩐지 조금 으스스해졌다.

기억을 더듬었다. 문을 열어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 거실의 중앙에 서서 왼쪽으로 꺾으면 보이는 방 두개. 그 중 오른쪽 방의 가장 구석에 있던 옷장. 그곳이 사부로의 보금자리였다. 모래알처럼 재가 밟힌다. 다행히도 벽은 쓰러져 있지 않았다. 살짝 만져 보면, 한 움큼 바스라져 버릴 정도로 타 버렸지만 아직 힘이 남아있다고 과시하는 것처럼 버티고 있었다. 라이조는 옷장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옷장처럼 생겼던 물건이 있는 곳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 사부로..! "


이리저리 그을리고, 타고, 부서져버린 이상한 모습. 라이조는 손바닥을 펴 옷장의 문을 어루만지듯 대었다. 예전의 그 매끈한 나무 느낌이 아닌, 거칠고 가시가 돋은 표면이 안쓰러워진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아 손가락을 천천히 집어넣고, 문을 잡아당겼다. 조금 비틀어졌던지 괴기스러운 소리가 난다.



[그 물건이 부서지면, 함께 부서져 사라진대.]



어릴 적에 했던 그 말이 생각난다. 안 돼. 사부로. 사라지지 마. 아직 형태는 남아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만날 수 있을 거야. 꼭, 제발, 제발. 있어야 해, 사부로. 여기, 남아 있어야 해.



" 어.. "



라이조는 얼빠진 소리를 냈다. 문이 열리자 그 안쪽. 계속해서 검은색만이 보이던 그 곳에 남겨진 선명한 주황색의 무언가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달달 떨리는 손을 뻗어 잡았다. 그리고 조금 묻어 있던 재를 털어낸다. 짧은 끈이 달린 책갈피였다. 서툰 글씨로 쓰여진 자신의 이름이 보인다. '후와 라이조'. 그것을 읽고 나서, 평소 습관대로 책갈피를 돌려 뒷면을 보았다. 아주 작고, 예쁜 붓글씨체가 보인다. 이상하다. 이것은 자신이 쓴 게 아니다. 라이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글자를 읽었다.






' 지키고 있었어. 안녕, 라이조. 찾아 와 줬구나. 고마워. '








그 날, 라이조는,

옛 집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방 안의,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옷장 앞에서,

많이 울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미안하다며 울부짖었다.


그의 꼭 쥔 주먹 속에는,

아무런 상처도 그을음도 생기지 않은

책갈피가 꼭 쥐여져 있었다.






-

Fin

Posted by MD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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