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Twisted

: 꼬이다





" 시시해. "


상당히 뻗친 곱슬머리를 가진, 앳된 목소리의 소년이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는 지루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하듯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 둔 채 힘을 실어 의자를 앞뒤로 까딱거렸다.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을 것 같이 위태로운 모습이였으나 주위는 딱히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가면을 쓴 여자아이는 손톱 손질을 하고 있고, 그녀와 비슷한 가면을 쓴 남자는 확성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이따금 그곳에 대고 마이크테스트를 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손톱을 가만히 보다가 몇 번 후후 불고는 무심한 투로 말했다.


" 심심할 게 뭐 있어, 레오. "


" 아니, 심심한 게 아니라 시시하다고 했잖아요. 알리규라 씨. "


레오라 불린 소년은 여자의 하이톤 목소리를 듣고 질렸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알리규라는 귀엽게 올려묶은 분홍의 포니테일을 도리도리 흔들며 어깨를 으쓱하곤 그를 무시한 채 다시 손톱 손질에 몰입했다. 레오는 한참을 까딱거렸다. 이제 의자에서 끼릭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흔들 흔들. 그것을 눈여겨보던 가면을 쓴 남자가 확성기에 대고 말한다.


" 밖의 람브레타가 심심해하는 것 같던데 소년-! "


불쾌한 잡음이 섞여 넓은 방 안에서 울려퍼졌다. 레오는 인중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삐죽였다. 아마 그의 말속에 있는 의도를 알고 이죽거리려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깍지를 풀고 귀를 어루만지는 것으로 보아 확성기의 소리가 거슬렸던 것 같기도 하다.


" 시끄러워, 펨토. "


알리규라가 펨토를 째려보듯 바라보며 말하고는 이젠 손톱을 이리저리 돌려보기 시작한다. 레오도 다시 그를 무시하며 의자를 움직이는 데에 집중했다. 그렇게 기괴한 음의 메아리가 전부 가시기를 기다리는 도중이였을까. 조금 더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끼익거리는 육중한, 이곳의 출입구가 열리는 소리다.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느긋하고도 나긋나긋한 목소리.


" ... 그럼 같이 놀다 올까? "


" 뭐야, 절망왕인가. 난 또 설렜잖아. "


" 그건 오해의 여지가 있는데요. "


레오의 농담에 빨간 눈이 치켜떠졌다. 레오는 펨토의 한마디가 마음에 들었던지 피식 웃으며, 돌연 열심히 움직이던 의자를 멈추고 뛰어내리듯 일어섰다. 목에 걸린 고글이 천장의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 한탕 치르러 가 볼까, 그럼. "


절망왕은 레오의 말을 듣고 비죽 웃으며 머리를 이마 위로 쓸어올렸다. 레오와 절망왕 간의 무언의 눈빛이 오갔다. 펨토는 짐작한듯 다녀오셔. 하며 손을 날아가려는 풍선마냥 성의없이 흔들었다. 레오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무언가를 꺼내 절망왕에게 던진다. 가볍게 받아내는 절망.


" 시동 걸어 둬. "


" OK. 얼른 준비하고 나오라고. "


람브레타의 열쇠를 맡기고 뒤를 돌아보니, 무언가 작은 생물이 갑작스레 레오의 눈앞에 나타났다. 레오는 놀란 기색 없이 당연하다는 듯 회색의 작은 원숭이에게 한 두번 정도 대강 접혀진 손바닥만한 종이쪽지 하나를 건넸다.


" 자, 소닉. 라이브라 주위를 천천히 열 바퀴정도 돈 다음 그들 위에 떨어뜨려. "


음속원숭이는 고개를 재빨리 끄덕이며 종이쪽지를 들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랜만이라 신났구나. 레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천천히 문을 나섰다.


" 그새 또 바뀐 거야? "


그는 머리를 가지런히 내리고 옷소매 끝으로 안경을 닦고 있는 블랙에게 말을 걸었다. 블랙은 어깨를 으쓱하고 안경을 살포시 썼다. 그리고 코트를 벗어 어깨에 걸친다.


" 이 편이 좀 더 선량해 보이잖아? "


" 당당하네. "


피식 웃어넘기는 레오. 블랙도 덩달아 비슷하게 웃어보인다. 그리고 무언가를 움켜쥐는 손짓을 한 뒤 엄지로 꾹 누르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 저번에 해둔 걸 하려고? "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날을 세워 푹 쓰러뜨리는 손짓을 한다.


" 이게 좀 더 좋지 않겠어? "


둘은 개미집의 입구를 찾아낸 개구진 아이들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검고 얇은 초침이 신나게 움직이고 있다. 시기는 괜찮은걸. 이제 곧...


" 펑~ "


레오가 장난스레 펑 하는 소리를 내기가 무섭게, 커다랗게 무언가 무너지는 콰광하는 소리가 헤르살렘즈 롯의 안에서 울려퍼졌다. 뒤이어 우드득거리는 괴기스러운 소리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섞여 울린다. 이계인들의 다채로운 울음소리가 신명나게 들린다.


" 뭐야, 실시간으로 보고 싶었는데. "


블랙이 코트를 람브레타의 좌석에 던지며 불평했다. 하지만 입가는 여전히 미소에 싸인 것이, 얼른 나가서 상황을 보고 싶은 심정인 것이 틀림없다. 레오 또한 같았기에 시동이 걸려 있는 람브레타의 헤드를 잡고 텅텅 소리를 냈다.


" 몇 번 더 남았으니까 걱정 마. "


정말? 또다시 둘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참으로 천진난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자, 그럼 이번엔 어떻게 될까나. "


저번처럼 사상자 없는 사고로 밀고나가긴 힘들테니까. 레오는 머리를 굴렸다. 이번엔 라이브라가 어떻게 나올 지 상상하는 것으로도 즐거웠다. 자신들의 건물은 무사한 채, 그 주위 건물들이 차례차례 부서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는 느낌이 어떨까. 가까이 가서 의안으로 잠깐 살펴보고 싶은데..


하려던 참에 훅 하고 지나가는 검은 옷의 여성. 블랙이 그녀를 눈으로 쫒으며 말했다.


" 불가시의 늑대인간이군. "


" 와, 벌써 나온 거야? 재밌어지겠는데. "


어디보자, 남은 폭탄은..


레오는 고글을 쓰며 손가락으로 셈을 했다.


...다섯 개.

Posted by MD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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