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타마 - 현대 패러랠


[ 케마 토메사부로 X 젠포우지 이사쿠 ]




< 늦은 기념일의 너에게 >




  째깍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초침이 부드럽게 시계를 타고 흐른다. 맞아.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지. 이사쿠는 의자에 털썩 앉아선, 가만히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쓰레기장에 내 놓은, 다 낡아빠진 의자였다. 더 이상 쓰이지 않은 외로운 의자에 앉아, 외롭게. 그저 외롭게 고개를 손바닥에 쳐박고 어깨를 들썩인다. 알고 있어. 궁상맞은 거. 뭔가 비련의 주인공 같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다 늦어버렸다. 더 이상 자신에게 기회는 없다.

  저의 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 걸 알 수 있었다. 얼굴에 열도 난다. 그야 그렇겠지. 지금 울고 있는 건 오히려 술 때문일지도 모른다. 토메사부로. 너를 보았던 몇 년 간을 기억한다. 도저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친구의 틀에 갇혀 주위를 돌았던 그 나날을 기억하고 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바깥 바람 좀 쐬고 올게. 라는 말에, 혹시 많이 취한 걸까 봐 고민하다 따라나갔던 자신을 때리고 싶었다. '응,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전화너머로 하던 그의 말투가 미친 듯이 사랑스럽고도 심장이 내려앉을 듯 무거웠다.

  "사귀는 사람이,"

  있었구나.

  목이, 입술이 떨렸다. 무심코 중얼거리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꼴사나운 목소리가 제 귀를 찔렀다. 멍청하다. 멍청해. 쿵. 쿵. 주먹을 쥐어 관자놀이 부분을 끝없이 때려댔다. 머리가 울린다. 코를 훌쩍일 때마다 목이 아팠다. 아, 술자리에 남아 있던 친구들이 걱정하겠지. 미안해. 저도 모르게 돌발행동을 한 것을 깨닫고 다시 한 번 머리를 한 대 쳤다. 찾고 있으려나. 내가 없었던 것처럼 별 일 없이 계속 마시고 있어도 되는데.

  가로등 아래는 적막했다. 쓰레기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퀘퀘한 냄새가 나는 곳. 지금의 자신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쓰레기야. 나는 쓰레기.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안 들어와?'하고 웃으며, '방금 통화하던 사람은 누구야? 애인?'이라고 말하며 왁자지껄 웃어버리고 싶었다.

  "안 돼…."

  안 돼. 나는 할 수 없어. 그런 말을 꺼내려다가는, 다시 울음이 복받쳐올라서.

  "……."

  목으로 울음소리를 삼켰다. 훌쩍, 훌쩍. 더 이상의 소음을 이 가로등 아래에서 채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의자를 버려 줘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쓰레기 봉투들 사이를 뒹굴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겠지. 시선을 돌려 의자 아래를 가득 채우고 있는 봉투들을 훑어보았다. 여기에 누우면, 마음이 좀 더 편해질까.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나 눈을 깜빡였다.

  나도 참,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소매로 눈가를 닦아내었다. 소매에 묻어 있던 눈물이 다시 눈두덩이를 쓸고 지나갔을 뿐이지만, 이제는 훨 나았다. 큰 충격이 있으면 술도 깬다던가. 어떻게든 깬 걸까, 그렇다면.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서 미안하다고 해야지. 그냥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할까? 그렇다고 치기엔… 눈가가 너무 부어 있었다. 몇 분이나, 몇 시간이나 울고 있었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시간일지도 몰랐다. 그냥, 술버릇처럼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버릴까? 그래. 그게 가장 나은 답인 것 같아. 몇 시인지부터 확인해보자.

  주머니를 살폈다.

  "어…."

  없네. 놔두고 온 걸까. 콧소리를 내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래서야, 그냥 집으로 가도 별 말 없겠네. 이어폰만 돌돌 감겨 있고, 텅 빈 외투의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훑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사쿠."

  쿵. 심장이 뛰었다.

  쿵. 쿵. 발걸음이 멈췄다.

  가로등 불빛이 아닌, 다른 불빛이 자신을 향해 비춰지고 있었다.

  "…토메사부로?"

  이제야 들리는, 급한 숨소리. 헉헉대는 호흡.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네 몸동작. 탁탁, 힘있게 다가와서는 손을 잡아들고, 그 손 위에 휴대폰을 턱하니 올려 두는 오랜 친구.

  "술. 마저 마시러 가자."

  "토메사부로는, 사귀는 사람 있어?"

  동시에 터졌다. 허나 서로의 말은 똑바로 들었다. 아직도 이사쿠의 손을 잡고 있던 토메사부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 역시. 그런 걸까.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재촉해버린 거겠지?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

  토메사부로는 이사쿠의 손을 끌어당겨 안았다. 꽉 안아서, 등을 토닥였다.

  "울었구나."

  토닥. 토닥. 이대로 토닥임을 받다가는 다시 코끝이 찡해져와서, 또 울어버릴 것 같아 그를 밀어냈다. 토메사부로는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들었어. 너도 참, 이상한 타이밍에 밖으로 나왔구나."

  그는 산뜻하게 웃었다.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런 표정을 지으며 잡은 손을 바라본다.

  "친구 사이에, 사랑해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거잖아?"

  가볍다. 가벼운 말이었다. 맞아. 그렇지. 하지만 자신이 듣고 싶은 사랑해는, 그런 게 아니었다. 머리를 한 대 커다랗게 얻어맞은 기분. 그래서, 거세게 그의 손에 잡힌 제 손을 빼냈다.

  "…그건 실례야."

  화가 났다. 고민하고 있던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그 단어 속에 담긴 어떤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기에 화가 났다. 나는 무겁게, 무겁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그 단어를 그는 한 순간에, 적당히 가볍게 말했다.

  "엄청, 실례란 말이야. 나한테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뚝, 뚝. 땅바닥에 눈물이 떨어져서 바로 소매로 가렸다. 축축해. 축축하고, 찝찝하고.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지금은 네 얼굴을 보기 싫어. 내 얼굴을 보여주기도 싫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했다. 뒤로 천천히 돌아서, 이대로 엉엉 울며 집에 도착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이사쿠."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그가 있는 거리의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사쿠!"

  급한 발소리가 들린다. 토메사부로의 발소리. 크게 뛰어와서는, 몸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 줘."

  "…줄 게 있었는데 네가 지금 그냥 가려고 하잖아."

  그의 입에서 답지않은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언제부터?"

  "술자리 약속 잡았을 때 부터."

  눈을 내리깔았다. 줄 게 있던가? 기대감이 생겼다. 너에게 상처를 받고서도, 아직 남아 있던 기대감이 새싹이 되어 솟아올랐다. 이대로 기대하면 안 되는데. 이러다가 실망하면, 너에 대한 걸 완전히 싫어하게 될 지도 몰라서.

  "기대하게 만들지 마."

  토메사부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의 손을 올려서, 이사쿠에게 잡아 달라는 듯 내밀었다. 미묘한 가로등 불빛에서도 보였다. 그의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보통 수전증이 있진 않았는데.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기대, 안 해도 괜찮아."

  잘그락. 바스락.

  그는 작고 동그란 디자인의 봉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사탕?

  "…내가 만든 거니까."

  부은 눈을 될 수 있는 만큼 크게 뜬 것 같았다.

  "사탕 만드는 걸 도와주는 친구한테 연락하는 걸 들켜서는… 미안해."

  토메사부로의 말을 들으며 손으로 봉지의 봉합부분을 살짝 열었다. 조금은 엉성한 모양의, 알알이 사탕들. 신기하다는 듯 사탕을 확인해보는 이사쿠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토메사부로는 입을 열었다.

  "늦었네. 기념일."

  "난 너한테, 아무 것도 안 줬…."

  "좋아해."

  그는 이사쿠의 말을 끊었다.

  "…."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사랑해가 더 좋아?"

  울컥. 머릿속이 엉망이다. 전부 내가 착각했다는 거지, 지금? 정말. 불운이라는 건 여전하네. 몇 시간, 몇 분 전만 해도 실연당한 것처럼 펑펑 울었는데.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죽고 싶을 정도로 좋아서.

  고개를 저었다.

  "좋아해도, 좋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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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D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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