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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마 토메사부로 x 젠포우지 이사쿠 ]



토메사부로는 눈을 떴다. 아침이다. 어김없이 맑은 소리를 내는 새들이 하늘을 향해 날고, 일찍 일어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멀리서부터 간간히 들린다. 그는 눈을 천천히 깜박거리며 방 안을 둘러본다. 6년동안 지냈던 익숙한 방 안이다. 하지만 이제는 무언가가 없다. 허전하다.


" 후우…. "


방의 중앙을 가르고 있던 칸막이는 사라졌다. 매일 밤마다 옆에서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던 그도 사라졌다. 목소리가 들렸다. 싸늘한 공기가 자리를 휘감는다. 오소소 소름이 돋아 팔의 옷 위를 손으로 비볐다.


" …. 씻어야지. "


젠포우지 이사쿠는 죽었다. 나의 눈 앞에서 보았다. 순식간에 창에 꿰뚫려 피를 토해내던 그를 보았단 말이다. 토메사부로는 계속해서 문장들을 곱씹었다. 이제 그는 없어. 이사쿠는 이 방에 없다. 이 학원에도 없고, 바깥에도 없고, 이 세상에도 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의 목소리가 들려. 잘 잤어, 토메사부로? 오늘도 물이 차갑네.


" …. "


얼굴에 찬물을 부었다. 울컥한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 어떻게 해야 잊을 수 있는 것인가. 머리에 물을 끼얹고 탈탈 털었다. 생각도 물처럼 털어져나가면 좋으련만. 마치 길게 끈을 달아 주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아 미간을 찌푸렸다. 신경질적으로 천을 머리에 얹어 비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삐져나왔다. 천은 금방 물기를 머금고 축축해졌다. 무겁게 축 늘어진다. 머리카락도. 천도.


" 일어났나. 토메사부로. "

" 그래. 좋은 아침. "


자동적인 아침인사를 내뱉는다. 좋지 않지만, 좋은 아침이라며 인사한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네가 없는 이 아침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너는 아는가. 점점 꼬여가는 뱃속처럼 천을 꾹꾹 짜댔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눈물처럼 떨어진다. 말 없이 가만히 천을 들고 쳐다보다가 툭툭 털어내고 줄대에 걸어두었다. 해가 높이 뜨면 저 물기는 다 마르겠지. 언젠가 그를 잊을 나의 눈물처럼.

아니, 잊을 수 있을까? 내가 그를?

토메사부로는 눈을 내리깔았다. 목 뒤를 잡고 주물거렸다. 근육통인가. 온 몸이 쑤셨다. 어젯밤의 악몽 탓일지도 모른다. 괜찮아, 토메사부로. 괜찮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한쪽 귀를 틀어막았다. 듣기 싫은 것은 아니였지만 그 목소리를 자꾸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렇다고 양쪽 귀를 다 막아버리기엔 그를 저버리는 것 같아서 망설였다.


" 괜찮지 않아. "


곱씹는다.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그에게 몇 십 번이고 몇 백 번이고 말해 주었던 그 말을 곱씹었다. 전혀 괜찮지 않으니까, 살아 있어라. 제발, 조금만 참아라. 곧 선생님들이 오실 거다. 그러니 눈을 떠, 감지 마라. 숨을 쉬고 정신을 차려라. 제발, 부탁한다. 부탁한다.


그는 내가 그렇게 애원하고 빌었음에도, 결국 숨을 거두었다. 나의 손을 소중하게 깍지껴 잡고 눈을 감았다. 나의 눈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나는 언제가 되면 너의 그 마지막 모습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될까.


아마 평생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발걸음을 옮겨 식당을 향했다. 익숙한 길이지만 익숙하지 않다. 혼자서 걷는 그 길이, 더 이상 대화할 상대가 없어 움직이지 않는 입이 괜히 야속하다. 함께였었는데. 5년동안 함께였었고, 남은 1년도 함께일거라 생각했는데.


" …. "


토메사부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푸르다. 구름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위를 향해 한숨을 쉰다.


네가 감아둔 붕대는 이제 쓸 수 없다.

너의 손길이 닿았던 것은 도저히 풀어헤쳐버릴 수 없어서.


그와 깍지를 꼈던 손을 조심스럽게 쥐어 본다.


평생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사쿠.


그 붉은 액체들 사이에서 나를 향해 웃어 주며,

괜찮다고 말했던 너를.

나는 차마 똑같이 감싸주지 못했다.


사랑했다. 젠포우지 이사쿠.





Fin.

Posted by MD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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